松河의 여행글

공주 공산성과 무령왕릉

松河 이종구 2009. 8. 28. 16:46

 문화기행 / 공산성 무령왕릉

 

 

공산성과 무령왕릉


 

 

                                                                                                                 공산성의 서문인 금서루

 

충남의 고도 공주시는 구석기시대부터 인류가 살았고 마한시대 불운국이 있었던 곳이며, 백제시대에는 두 번째 도읍지가 되어 사비성(부여)으로 옮길 때까지 64년간 왕궁이 있었던 곳이다.

백제시대에 웅진(곰나루) 또는 웅천(곰내)으로 불렸던 공주는 북으로 차령산맥이 뻗어 있고 금강이 감싸 흐르며, 남쪽으로는 계룡산이 솟아 있어 천연의 요새를 이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넓은 구릉지에는 각종 산물이 풍부하고 서울과 충남 내륙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여서 1928년까지만 해도 충남도청 소재지였던 곳이다. 그러나 일제시대에 경부선 철도가 생겨 도청이 대전으로 옮겨가고 고속도로마저 이곳을 멀리 비켜가는 등 개발에서 소외됨에 따라 지금의 공주는 한적하고 조용한 작은 도시로 남아 있다.

이러한 가운데에서도 공주를 유서 깊은 역사의 도시로서 공주답게 하는 것은 공산성과 무령왕릉을 비롯해 이 지역에 흩어져 있는 많은 유적들과 그것들을 둘러싸고 유유히 흐르는 아름다운 금강(錦江)이 아닌가 한다.


백제의 대표적 고대성곽 공산성(公山城)

금강의 북쪽에서 공주 시가지로 들어가려면 멀리서도 보이는 편도 1차선씩의 금강교를 건너야 한다. 이 다리를 건너 시가지로 들어가기 전 왼쪽에 공산성 주차장이 있고 매표소를 지나 40여 개의 비석이 줄지어 서있는 둔덕길을 조금 올라가면 공산성의 입구인 금서루(錦西樓)가 나온다.

공산성은 바로 역사에 나오는 웅진성으로 백제의 대표적인 고대성곽이다. 고구려와의 싸움에서 개로왕까지 죽고 패한 백제는 문주왕 원년(475)에 한산성으로부터 이곳으로 도읍을 옮겨왔다. 그리고 삼근왕, 동성왕, 무령왕을 거쳐 성왕 16년(538)에 사비성(부여)으로 도읍을 옮겼으니 이 공산성은 약 64년간 백제의 왕도를 지킨 곳인 것이다.

 

                                                                                                                         공산성의 왕궁터

 

북으로 금강이 흐르는 해발 110m의 야트막한 산자락의 8~9부 능선과 강안의 절벽을 따라가며 구축한 이 산성은 천연의 요새로서 성곽의 총 둘레가 2,660m 정도 된다. 원래는 토성이었으나 조선 선조·인조 시대에 대부분 현재와 같은 석성으로 고쳐 쌓았다고 하는데 숲이 우거진 성안에는 말끔한 산책로를 따라 곳곳에 유적들이 흩어져 있다.

현재 이 산성의 정문격인 금서루를 지나 왼쪽으로 성곽을 따라 올라가면 2층 누각으로 된 전망대가 있고, 여기에서 내려가면 북문인 공북루가 금강을 향해 서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성곽을 따라 가파른 능선을 넘어가면 만하루와 연지가 있다. 이 연지는 무너짐을 방지하기 위해 계단식으로 쌓아올린 못으로 깊이가 약 12.4m나 되며 좌우 양쪽에 수면까지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있다. 홍수로 인해 매몰되어 있었던 것을 1982년에 만하루 터와 함께 발굴해 복원했다. 연대는 분명치 않으나 공산성내 용수확보의 실제적 용도로 쓰였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금강을 내려다보며 서있는 만하루와 연지

 

만하루는 공북루처럼 금강을 바로 내려다볼 수 있는 둔덕에  자리잡고 있는 누각으로 경관이 너무나도 수려해 군사적 기능보다는 경승관람의 목적에서 지어진 것 같다. 또 그 뒤쪽엔 고사찰 영은사가 있는데 옛 건물은 원통전 하나만 남아 있다.

여기에서 다시 성곽을 따라 올라가면 정상 부근 평평한 터에 왕과 신하들이 연회장소로 사용했던 커다란 누각건물 임류각이 복원되어 있고, 그 곁에 명국삼장비와 군사를 지휘하던 장대지(將臺址)가 있다. 그리고 임류각의 동쪽 이 산성의 가장 높은 곳에 해방후 백범 김구 선생과 성제 이시형 선생이 이름을 붙였다는 광복루가 있고 그 아래 동문(東門)에 올라서면 오른쪽으로 공주의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공산성 왕궁터 옆에 있는 쌍수정

 

동문에서 산책로를 타고 내려오면 이 산성의 정문이었던 진남루(남문)가 나오고, 그 오른쪽에 조선시대 인조가 1624년 이괄의 난을 피해 머물다가 난이 평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곁의 나무 두 그루에 벼슬을 내렸다는 쌍수정과 그 사적비가 있다. 이 쌍수정 앞은 축구장  만큼 넓은 평지인데 이곳이 바로 백제의 왕궁터로 추정되는 곳이다. 하지만 그날의 흔적은 아무데에도 없고 이 터의 남쪽 중앙에 돌을 이용해 밥공기 모양으로 쌓아올린 연못만이 유일하게 발굴되어 그날의 궁궐 모습을 짐작케 하고 있다.

 

                                                                                                        무령왕릉이 있는 송산리 고분군

무령왕릉과 송산리 고분군

공산성을 나와 매표소에서 길 건너편 서쪽을 바라보면 시원하게 뚫린 포장도로 들머리에 아치 모양의 큰 문이 있다. 연화문 기와막새 모양의 가드레일로 꾸민 이 도로를 따라 조금 들어가면 길 오른쪽에 무령왕릉이 있는 송산리 고분군이 나온다.

송산리 고분군은 웅진을 도읍으로 하던 당시에 재위했던 백제의 왕들과 왕족들이 묻힌 곳이다. 동쪽으로 수려한 공산성이 건너다보이고 서쪽으로 곰나루의 금강이 아늑하게 감싸돌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명산 계룡산이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에 이미 사신사상에 따라 묘지를 선택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무령왕릉 내부 모양

 

이곳의 고분은 구릉 중턱 남쪽 경사면에 계곡을 사이에 두고 동북쪽에 1호부터 4호까지, 서쪽에 5·6호분과 무령왕릉인 7호분이 있다. 이밖에도 봉분이 분명치 않은 것이 지하에 많아 사적 제13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1호분부터 6호분까지는 모두 일제시대에 발굴 조사되었다.        

이 가운데 ‘송산리 벽화 고분’으로 불리우는 6호 고분이 유명하며, 특히 1971년 7월에 발굴된 7호분 무령왕릉은 완전한 처녀고분으로서 엄청난 문화적 유물이 쏟아져 나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진묘수

 

백제 25대왕 무령왕(501~523)과 왕비의 합장묘인 무령왕릉에서 나온 유물은 모두 108종 2,096점에 이르며 국보로 지정된 것만도 12점이나 된다. 왕과 왕비의 순금제 관모장식, 무덤의 주인과 장사일자를 기록한 지석과 토지신으로부터 땅을 샀음을 밝히는 매지권(買地券), 묘지를 지키는 돌짐승 진묘수(鎭墓獸) 등, 이 능에서 나온 유물들은 모두 공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데 그 세공의 정교함이나 예술적 아름다움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비의 금제 관식

 

이와 같은 공주의 유물들을 직접 감상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들러야 할 곳이 공산성 자락을 따라 내려오는 중동의 언덕 비탈에 자리잡고 있는 공주박물관이다. 무령왕릉의 이미지를 본떠 지은 이곳 전시실엔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 외에 국보 제108호 계유명삼존천불비상 등 많은 문화재가 전시되어 있다. 또 박물관 앞뜰에는 공주부근에서 출토된 소박한 석불들이 온화한 표정과 미소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곰나루에서 본 금강

 

이밖에 웅진이라는 이름의 탄생설화를 가지고 있는 곰나루도 한번 들러볼 만한 곳이다. 곰과 인간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지닌 곰나루에 가면 강변 소나무 숲속에 곰의 석상을 모시고 해마다 제사를 올리는 웅진사가 있는데, 공주박물관 입구에 있는 귀엽고 조그마한 돌곰상은 바로 이곳에서 출토된 것이다.    songha209@empal.com   

 

                                                                                             무령왕의 금제 허리띠

 

 songha209

Albinoni - Concerto for trumpet and organ in D maj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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